후기에 앞서 뉴욕마라톤을 준비 중이시라면 앞서 작성한 15가지 준비 사항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https://yeong-hey.tistory.com/41
그리고 뉴욕마라톤에 관심이 생겨 참가를 하고 싶다면 참가하는 방법을 기록한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https://yeong-hey.tistory.com/8
최근 나혼자산다에서 방송된 기안84의 뉴욕마라톤 완주 덕분에 2024 TCS 뉴욕마라톤에 참가한 후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은 관심과 흥미가 생긴 독자를 위한 것 뿐 아니라 언젠가 되돌아 보고 싶을 때 내가 다시금 추억하고자 적는다. 사진보다는 글 위주로 남기고자 한다.
1. 마음먹기에서 신청까지
나에게 뉴욕마라톤은 생애 첫 마라톤이었다. 종전에 10km와 하프 마라톤 그리고 32km 대회 등 훈련을 목적으로도 종종 참가하긴 했지만 참가했던 대회들 모두 결국 뉴욕마라톤 완주를 위한 여정이자 준비과정이었다.
작년 말 춘천마라톤에서 10km를 완주한 이후 그저 기록 갱신을 위해 겨울에도 쉬지않고 달리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풀코스는 소위 '마친자'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기안84의 대청호 마라톤 완주 방송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관련 뉴스나 글을 통해서 접하기만 해도 '저 힘든 걸 굳이 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어느 러너의 블로그 글을 보고서는 해외 마라톤을 완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접수받는 해외 6대 마라톤(지금은 7대가 되었지만)이 바로 뉴욕마라톤이었다.
해외 마라톤은 참가 방식부터 달랐다. 아니 쉬우면서도 쉽지 않았다. 앞서 올린 참가방법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방식과는 달리 해외 마라톤은 단지 접수 기간 내에 참가 접수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접수에서 당첨될 확률은 5~10% 이기에, 당첨이 쉽게 보장되지는 않았다. 추첨결과는 역시나 탈락이었고 미리 알아두었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바로 구매했다. 나보다 먼저 풀코스를 완주한 고등학교 동창에게도 물어봤더니 선뜻 같이 가겠다고 해서 같이 준비하게 됐다.
2. 혼자 준비하는 첫 마라톤 훈련 과정
3월 즈음에 여행사 패키지를 구매하고서부터 어떤 식으로 준비할 지 고민했다. 일단 이미 참가에서부터 많은 지출이 있던 이유도 있었고, 사실 따라가기만 한다면 기록이 달성할 수 있다는 유료 프로그램은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 같이 뛰어야 하는 러닝 크루도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 훈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구체적인 훈련 페이스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dimo kim(김성한)님의 블로그에서 올려주신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매주 그 프로그램을 따라서 실시했다.
이윽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200km 이상을 달리면서 처음으로 30km 이상 장거리 주도 해보고 인터벌도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날에는 30분 이상은 못뛰겠어서 트랙에 벤치에 음료수 여러개를 펼쳐두고서 30분마다 홀로 급수하면서 뛰기도 했다.
뉴욕마라톤 일정에 맞춰 32km 공주백제 마라톤, 국제국민마라톤 하프 그리고 춘천마라톤 10km 등을 나가서 목표페이스 설정도 해보고 덩달아 개인 PB도 갱신했다. 대회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내 마음 속에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걱정과 염려가 공존했다.
여행사 패키지라고 하지만 보장된 참가권과 호텔 숙박권만 제공되는 것이라 나머지는 직접 내가 했어야 했기에, 출국서부터 대회 이후 여행까지 직접 예약하고 확인하느라 정신적으로도 피곤해지고 있었다.
3. 뉴욕마라톤 당일
1) 대회 전 엑스포 방문
해외 마라톤은 우리나라 마라톤의 친절한 사전 물품 배송과 달리, 대회 직전 3일동안 지정된 장소에 방문하여 배번호와 기념품을 받아야 한다. 낯설은 도시인 만큼 나와 친구는 함께 움직이기로 했고, 대회 전날 방문하였다.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한산했기에 엑스포장은 훨씬 넓어보였고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배번호와 기념품 긴팔티셔츠를 받을 수 있었다. 신청 당시 기념품 티셔츠 사이즈를 M으로 신청했으나 현장에서 입어보니 작아서 L로 교환했다.(174/72kg/평소 105를 넉넉한 핏으로 즐겨입음)
기념품을 수령하고서는 사람들을 따라 뉴발란스 매장으로 향했다. 뉴욕마라톤 로고가 박혀있는 정말 다양한 상품이 있었지만 마지막 날이라 재고가 넉넉하진 않았다. 가격도 생각보다 비쌌다. 바람막이 같은 경우는 250달러 정도 됐다. 자연스레 '그돈씨'라는 생각과 '뉴욕마라톤 한정판'이라는 생각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차례 입어보길 반복하다 가성비과 한정판,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싱글렛과 통풍 잘되는 긴팔 집업을 약 150달러에 구매했다.
뉴발란스 매장을 나오자 러너라면 350% 눈 돌아가는 러닝 장비 관련 업체들이 부스를 차리고서 뒤늦게 온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민에서부터 아식스, 온러닝, 아디다스 등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부터 없어서 못사는 브랜드까지 정말 다양한 브랜드가 있었다. 그나마 불행이자 다행인 건, 대회 당일 수령할 물품보관을 '직접' 피니시 라인 근처까지 가서 맡겨야 하므로, 우리에게 쇼핑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마라톤 완주 후에 갈아신을 신발 하나(KANE)를 더 구매했다.
2) 대회 장으로의 이동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시차적응을 대비해두어 그런지 숙면을 취하고서 대회 당일 새벽 4시쯤 일어났다. 이것 저것 미리 준비해두고 잤음에도 친구와 한 방에서 동시에 준비하느라 버스 집결시간 5시까지는 조금 빠듯했다. 여행사에서 전날 미리 준비해준 간식세트(약과, 사과, 바나나 등)를 먹으면서 약 한 시간 가량을 이동했다.
버스가 멈추고 하차를 하자마자 보안검색대에서 물품 검색을 받은 후 배번에 적혀진 각자의 컬러존(PINK, ORANGE, BLUE)을 향해 나뉘어 걷기 시작했다. 나뉘어 질 때마다 그리고 구역을 날 때마다 보안요원들에게 배번을 확인받아야해서 겉옷을 걷어 배를 내밀고 다니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10분정도를 걸은 후에 우리는 BLUE START VILLAGE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대략 7시즈음이었다. 근처 던킨 도너츠 천막에서 나눠주는 시나몬 베이글을 두 개 집어서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추위와 장장 세시간 반을 싸우고 나서야 우리는 출발선으로 향할 수 있었다.
3) 드디어 주로에서
내가 배정받은 그룹은 SUB-4 그룹이었다. 내 개인적인 목표는 싱글이었음에도 아마도 접수할 때 같이 제출했던 목표기록에 맞춰 그룹을 배정해준 듯 싶었다. 기안84도 같은 이유로 초반에 병목을 맞았을 것이고 나처럼 초반부터 이리저리 뚫고 나가느라 후반에 지쳤을 것이다.
뉴욕마라톤 코스는 크게 세 개의 대교와 다섯개의 자치구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 출발은 스태튼 아일랜드 자치구에서 브루클린으로 넘어가는 베라자노 내로우스 대교에서 시작된다. 초반부터 가파른 언덕이지만 양옆으로 흐르는 해협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대교를 넘어서면 바로 브루클린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팻말과 함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환영을 보내준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면서도 나서기 쑥쓰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조금 지나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녔다. 특히 귀엽게 팔 들고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기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렇게 신나게 브루클린을 관통하자 하프 지점에서 두번째 대교가 나왔다. 바로 폴라스키 대교인데 이 곳에는 다리 진입에 앞서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고, 주로 좌측편에는 'NEXT REST STOP 13.1 MILES'라는 광고판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가파른 이 대교에서부터 햄스트링에 느낌이 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교를 넘어서니 브루클린에서 그랬던 것처럼 퀸스에서도 열렬한 응원과 환영이 맞이하고 있었다.
브루클린이 힙한 오래된 느낌의 도시라면 퀸스는 가로수로 뒤덮힌 도로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응원 밴드가 거리에서 펼치는 공연도 기억에 남으며, 때로는 주로가 좁아질 정도로 넘쳐나는 응원 인파도 기억에 남는다.
또 다시 퀸스에서도 사람들과 소통과 교감을 하다보니 어느덧 25km 지점에서 죽음의 다리로 불리는 퀸스 내로우 대교가 나타났다. 주로 숙지를 미리 하지 못했던 탓일까 진입하기 직전까지도 어떤 다리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만 이내 몸소 체감하게 됐다. 말그대로 죽음의 언덕이었다. 속도가 쉽게 나지 않으니 주자들이 제법 밀려있었고 나 역시도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언덕이 계속 되다보니 햄스트링이 자꾸 꿈틀거렸다. 종아리도 뭉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하프에서부터 시작됐던 위경련은 계속됐다. 설상가상으로 수족냉증마냥 손발이 저리면서 차가워졌다. 걷고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보란듯이 튕겨져 나가고 싶은 반발심(?)이 생겨서 더 열심히 달렸던 것 같다.
이윽고 가파른 내리막과 함께 커브길이 나왔고 그곳에서부터 다시금 응원 인파를 만났다. 드디어 맨해튼에 입성했다. 지도상 맨해튼 동쪽을 따라 할렘가를 거쳐 브롱크스를 살짝 넘어 다시 센트럴 파크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사실상 언덕이 너무나도 많은 난코스였다. 30km가 넘어서니 기안84가 그랬던 것처럼 응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할렘가라서 응원 인파 규모도 적었던 것도 있었다. 브롱크스까지 어떻게 지났는 지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햇볕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뛰었기에 햇살에 비친 가로수와 거리 풍경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찬란하게 남아있다.
죽을 듯 살 듯 오른손으로는 왼손 아귀를 지압해가며 그리고 복통을 참아가며 38km를 넘어서니 서서히 다시 응원인파가 많아지면서 센트럴 파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센트럴파크에 들어서니 그동안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응원 인파가 모여있었다.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누가봐도 힘들어보이는 나를 열심히 응원해주는 그분들의 목소리도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40k를 지나자 진짜로 100m 단위로 남은 거리를 계산했던 것 같다. 언제 끝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다. 대회 전 훈련하면서 나는 정말로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게 들어오고 싶었으니 말이다. 어느덧 피니시 라인과 함께 관람객들 소리가 들리자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마도 지난 6개월 동안 대회 준비를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완주에 대한 열망과 설렘에 비례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한 사투와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울컥하는 내 마음과 동시에 울렁하는 속을 부여잡고서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첫 마라톤을 완주했다. 비록 하이라이트였던 센트럴파크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쉽지만, 뉴욕마라톤 전체를 몸소 느낄 수 있어서 정말이지 좋았다.
4) 뉴욕마라톤을 되새기며
뉴욕마라톤을 직접 달리면서 느꼈던 것을 돌이켜보니 아래와 같았다.
- 다리를 제외한 구간의 80% 이상에 응원 인파가 항상 있었으며, 특히 마지막에 센트럴파크에는 3~4 줄의 응원단이 양측으로 있어서 마치 마라토너 선수 대회에 내가 참여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 싱글렛 미리 새겨간 이름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으로 응원 받을 수 있었다.
- 응원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즐긴다. 즐겁게 공연하는 밴드도 여럿 있었고 혼자서도 춤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하프 구간까지 다양한 밴드들의 연주와 디제잉이 있었는데 너무 흥이 나서 저절로 오버페이스가 됐다.
- 나에게 뉴욕마라톤은 응원, 풍경 그리고 언덕 이 세 개의 단어로 남았다. 세상에 그 어떤 대회보다도 재밌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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